[안장원의 부동산노트]
(하) 실마리 찾기 어려운 전세난 해법
전세 공급 급감이 부른 전셋값 급등
"소득공제 확대해 월세 전환 유도"
임대차법 등 정부 대책 수정 요구도
부동산중개업소들은 “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이후 전셋값이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고 있어 앞으로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세입자는 더더욱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전세 매물 80% 급감
‘창고’에서 나오는 물건이 줄어든 데다 그나마 시장에 나오는 셋집도 수익이 나은 월세로 돌아선다.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돌리는 데 적용하는 이율인 전·월세전환율이 4%에서 2.5%로 낮아져도 임대인 입장에선 예금금리보다 높은 월세가 유리하다. 세입자 동의 없이 전세를 월세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신규 임대차 계약 때 월세로 하는 게 2년 뒤 계약갱신청구권을 고려하더라도 낫다.
부동산 정보사이트인 아실에 따르면 이번 달 하루 평균 서울 아파트 전세매물이 9186건으로 지난 7월 4만1580건보다 80% 가까이 급감했다. 7월 전·월세 물건 10건 중 6~7건이던 전세가 이달엔 5건 미만으로 줄며 월세보다 적다.
전세 수요는 안팎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상 5% 상한선의 계약갱신청구권은 분양가를 시세보다 훨씬 싸게 제한하는 분양가상한제처럼 과잉 수요를 유발한다. 집을 사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던 세입자가 싼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는다. 3기 신도시 대규모 공급, 집값 전망 불확실 등으로 기존 세입자 외에 주택시장에 들어오는 새 수요도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한다.
국민은행의 서울 전세수급지수가 지난달 189.3으로 5년 전인 2015년 10월(193.1) 이후 최고다. 전세수급지수는 범위가 0~200으로 200에 가까울수록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2000년 이후 역대 최고가 그해 전셋값이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18.7% 치솟은 2001년 2월 198.5였고, 지난달 이전 가장 높은 수치는 2015년 10월 193.1이었다.
매매 규제에 발목 잡힌 전세 대책
전세 수요를 줄이는 방법으로 매매 전환이 있다. 2013년 이명박 정부는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방안’으로 ‘주택시장 정상화’를 들고 나왔다. 취득세율 인하 등으로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집값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 정부는 꿈도 꾸지 않을 방안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화 등 전세 수요를 더욱 늘리는 대책을 유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7·10대책에 따라 내년 이후 조합 설립을 신청하는 재건축 조합원은 2년 이상 거주해야 조합원 분양 자격을 받게 된다.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다른 가족은 기존에 살던 집에 그대로 살면서 조합원만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교육 등으로 온 가족이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셋집이 없어지는 셈이다.
월세 선호도를 높여 전세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월세 매물은 임대인의 월세 선호로 전세보다 상대적으로 덜 줄었다. 현재 전세보다 많은 월세 부담을 낮추면 월세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전세난을 유연하게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월세 세액공제 혜택을 대폭 늘리면 월세의 주거비 상승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세난 대책으로 월세 유도를 위한 월세 소득공제가 시행됐으나 공제 요건이 까다로워 효과가 작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조건이 전용 85㎡ 이하, 공시가격 3억원 이하 주택이고 연 소득 7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올해 공동주택 기준으로 3억원 이하는 5채 중 한 채에 불과하다.
전세난 ‘즉효 약’은 신규 주택 공급 확대다. 새로 입주하는 주택이 늘어 재고 주택 수가 증가하면 그만큼 임대 매물이 늘게 된다. 입주 주택에 들어가면 기존에 살던 집이, 입주 주택을 임대하면 세 놓는 집이 임대 매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이 적어서는 안 되고 늘어나는 전세 수요보다 많아야 한다.
입주 줄고 일반가구 수 늘어
내년엔 기존 전셋집 감소도 더 심해질 전망이다. 재건축 조합원의 거주 입주가 본격화하고 쉽게 매도하기 위해 전셋집을 빈집으로 남겨두는 주인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신규 전세 수요가 더욱 늘어난다. 주택 수요 단위인 서울 일반가구 수가 주춤하다 지난해부터 많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늘어난 서울 일반가구 수가 5만6000여가구로 2만5000~3만가구 사이인 예년의 2배가 넘었다.
일반가구 수 증가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가구 수 집계가 아직 안 되지만 서울 주민등록 세대 수가 올해 9월까지 7만8000여세대 늘어 이미 지난해 연간 증가 수(6만3000여세대)보다 많다. 지난해 이후 입주물량이 예년보다 많았어도 전셋값이 올해 강세로 돌아선 배경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 수요가 급증하는데 공급이 줄어들어 전세 ‘병목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시장의 차별화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세제 거주요건 강화 등으로 신규 분양 계약자와 다른 집에 전세로 사는 유주택자가 입주 주택과 본인 소유 주택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입자 연쇄 이동이 일어나며 이들이 살던,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지는 지역에선 전세매물이 늘어나는 반면 이들이 입주하는 지역의 전세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세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신규 계약으로 규제를 확대할 수 있다. 표준임대료 등으로 직접적인 가격 제한을 두는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의 전·월세상한제(상한선 5%)를 당장 신규 계약에 적용하긴 어렵다. 이는 임대료를 파악할 수 있는 전·월세 거래 신고제가 시행된 뒤 가능한데 신고제가 내년 6월 시행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가격을 무시한 임대료 규제는 매매시장 규제와 얽혀 복잡해진 전세시장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난을 가중시킨 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해 실거주를 요구하는 각종 정부 대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매매시장과 달리 가수요가 없는 전세시장은 단기간에 안정시킬 수 없다"며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면서 주택 공급을 서둘러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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